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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 이제는 말할수있다 [ 납량특집 ] ✅
Level 10 조회수136
2024-06-25 12:25

기억이 있는 가장 어렸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제가 국민학교 1,2학년 때 일이예요.


저희 친정집은 빌라 2층인데, 안방 창문을 열어두면 빌라 현관 앞에서 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소리가 다 올라오는 집이예요. 

그리고 안방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가리는 곳 하나 없이 아래가 훤히 다 보였어요.  


전 어렸을 때 안방에서 항상 할머니와 함께 잤어요. 

벽에 붙어서 자는 걸 좋아해서 항상 창문 맞은편 벽 쪽에 누워잤지요. 

그리고 그 날도 지금같은 열대야의 여름밤이었어요. 


새벽 2시쯤 됐을까? 너무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어요.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 빌라 앞에서(안방 바로 아래지.) 막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난거예요. 

목소리를 들어봤을 때에는 중,고등학생 한 7,8명 정도되었을까 싶었어요. 

저도 어렸기 때문에 중고등학생은 무서우니까..가만히 일어나서 앉아서 

"아.. 저러다 가겠지..다른 데 가서 놀겠지" 하고 기다렸어요. 

할머니는 바로 옆에서 코까지 골면서 잘 주무시는데 깨우기도 그렇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목소리들이 점점 커졌어요. 

막 깔깔깔 소리를 지르면서  서로 욕하고 장난을 치고 그러는 거 같더라고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대체 누군지 민폐쟁이들 얼굴이라도 좀 보자 싶더군요.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창문쪽으로 한 3걸음 내딪었는데 

바로 뒤에서 



"보지 마." 



라고 왠 젋은 여자 목소리로 누군가 제 뒤에서 속삭였어요. 

방에는 할머니와 나 밖에 없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얼어붙어서.. 도저히 뒤를 돌아볼 수가 없더라구요. 

물론 그 와중에도 창 밖에서는 오두방정을 떠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한참을 방 한가운데 우뚝 가만히 서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군요. 

뒤를 돌아볼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밖에서 떠드는 애들이라도 보자고 생각했어요. 

불량청소년이든, 가출청소년이든 나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시끄러운 창문쪽으로 턱턱 걸어가서(그 두 세 걸음이 어찌나 멀던지...) 

밖을 냅다 내려다봤어요. 


그런데 그 순간부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우리 빌라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무섭도록 조용해졌어요. 

마치 제가 창문을 내려다봄과 동시에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순식간에. 


아 정말... 진퇴양난이 이런 건가. 

정말 뭐라도 보이면 돌아버릴 것 같아서 더이상 아래를 보고 있고 싶지도 않은데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곳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기도 무섭고, 

할머니를 깨우려면 뒤돌아봐야하는데 

뭐가 있을 지 모르는 뒤를 돌아보기는 더 무섭고.. 

너무 오래 가만히 서있었더니 다리가 저리고 어지러울 지경인데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눈을 꼭 감고 창틀을 꽉 붙잡고 가만히 서있었지요. 


결국 밤잠 짧으신 할머니가 새벽녘에 깨어나셔서 

창문을 들여다보는 채로 가만히 서있는 절 보고 "너 지금 뭐하냐"고 말을 거시기 전까지 

그대로 가만히 거기 서있어야 했어요. 


지금도 열대야의 밤에 잠 못 이룰 때면 가끔 그 일이 생각나요. 

대체.. 우리 집 앞에서 떠들고 있었던 그 아이들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저에게 보지말라고 뒤에서 속삭인 사람은 또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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