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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 이제는 말할수있다 [ 납량특집 ] ✅ - 달
Level 10 조회수222
2024-06-25 11:14

사람이었을까 귀신이었을까

무려 14년이 지난 지금도 저로서는 참으로 미스터리하고 소름 끼치는 일에 대해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때는 2004년 어느 여름날. 당시 고1이었던 저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집을 나섰습니다.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몇 가지 골라서 계산하고 나온 뒤 아파트를 향해 걷고 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어둡고 구석진 아파트 화단 쪽으로 시선이 가는 겁니다. 그때 제 눈에 조금 특이한 형체가 보였습니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긴 생머리의 어떤 여자가 보라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1층 베란다와 베란다 사이의 틈에 바짝 붙어 서서는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아파트의 구조가 보통은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양옆에 각 세대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모습을 건물 밖에서 쳐다보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부분이 마치 홈이 파여 있는 것처럼 쑥 들어가 있습니다. 여자는 바로 그 부분의 벽에 딱 달라붙어서 태연한 얼굴로 저와 눈을 맞추고 있었죠. 여자는 제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며 쳐다보고 있었고, 처음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던 저는 점점 소름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준에서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마치 뭔가에 쫓기는 듯 벽에 착 달라붙어 저를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는 그 여자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산책을 나왔다거나 저처럼 뭔가 살 게 있어서 외출을 한 것이라면 그런 으슥하고 구석진 곳에서 그러고 있다는 게 더더욱 말이 안 됐습니다. 저는 살면서 가위에 눌린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귀감 같은 뭔가를 보거나 느끼는 능력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를 마주친 그 순간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시간이 흘러서 다시 생각해 보니 여자가 왠지 일반적인 사람과는 아주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기분이 참으로 이상해지더군요.

그 일을 겪은 후로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왔던 것처럼 귀신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피 칠갑을 한, 하얀 소복을 입은 정형화된 형태가 아니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존재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여담으로 이 아파트에 사는 동안 텅 빈 놀이터에 있는 그네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상황에서 홀로 왔다 갔다 움직인다든지 하는 장면들을 심심찮게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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